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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이젠 진짜 시작하나 했다고요. 그런데 지금껏 내가 들은 말은 내가 '선택'을 기다리는 '수학 하렘'의 일원이라는 것 뿐이네요. 절대 타당하지 않습니다."
천재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1968~1921)의 업적을 담아낸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투표권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이 묵묵히 앞길을 개척해 나간 과정을 무대에 담았다.
헨리에타 레빗(안은진)은 꿈에 그리던 하버드대 천문대에서 일하게 됐지만 3년거치17년 대형굴절망원경은 구경도 못하고 '인간 컴퓨터'인 계산원으로서의 일만 주어진다. 천문대장인 찰스 피커링은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낮기 때문에 여성을 고용하면 같은 가격으로 더 많은 인원을 고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가정부였던 윌러미나 플레밍(박지아)을 포함해 여성들을 계산원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피커링의 하렘'은 이들 부서를 이르는 말이 신한카드 스피드론 었다.
헨리에타는 창의적인 연구는 할 수 없고 남자들이 망원경으로 촬영한 별의 좌표 기록만 해야 한다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일과가 끝난 밤에 세페이드 변광성의 변화를 연구한 것. 동생 마거릿의 피아노 연주를 듣다가 별의 밝기와 음계 간 유사성을 알아낸 헨리에타는 광도가 밝을수록 변광 주기가 길다는 '레빗 법칙'을 발견 새마을금고 이자율 했다. 변광성의 밝기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들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을 발견한 최초의 인물이다.
연극은 유리천장도 아니고 여성을 대놓고 배척하던 시대에 앞길을 개척해 나간 이들의 연대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불합리하고 어이없는 관습과 처분에 관객들의 속이 터지지만 극은 감정의 동요를 최소화하고 고요하게, 그러나 힘차게 뚜벅 뚜벅 나아 내 생애 봄날 간다.
[서울=뉴시스]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일런트 스카이'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배우 안은진이 7년 만 2000천만원 에 연극 무대로 돌아와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헨리에타를 연기한 안은진은 당차고 에너지 넘치는 청년 시절부터 병환으로 휠체어에 앉은 노년기까지 폭 넓은 시기를 위화감 없이 연기해 냈다. 극 초반 목소리가 작은 듯 했지만 이내 페이스를 되찾는 모습이었다.
여성 조연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였다. 애니 캐넌 역의 조승연은 깐깐한 관리자이자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의 이미지를 잘 그려냈다. 윌러미나를 연기한 박지아는 우렁찬 목소리로 코믹한 대사를 던져 관객들의 웃음을 터지게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한정된 공간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무대도 인상적이다. 3개의 층위를 만들어 가장 밑 층은 천문대, 중간 층은 레빗의 집, 윗층은 여객선을 표현했다. 천문대의 돔과 여객선의 라인, 바닥의 부드러운 곡선이 각각의 공간을 구분하면서도 또 겹쳐지게 한다.
무대의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마치 관객석으로 쏟아질 듯한 별 무더기가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다. 광활한 우주와 피아노 선율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 시청각적으로 풍요로운 연극이다.
[서울=뉴시스]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6일부터 12일까지 '노벨 주간'이 진행된다. 헨리에타 레빗이 더 오래 살았다면 노벨상 수상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스웨덴 한림원은 헨리에타 레빗을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고려했지만 이미 그는 사망한 뒤였다고 한다.
★공연 페어링 : 샴페인 '뵈브 클리코'
'사일런트 스카이'의 무대 윗편은 명멸하는 불빛으로 수놓아져 있다. 밝아졌다 사라지는 별빛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보글거리는 샴페인의 기포가 떠올랐다.
헨리에타 레빗과 그의 동료들이 우주과학 분야에서 여성 개척자였듯 와인 업계에서는 샴페인하우스 '뵈브 클리코'의 마담 클리코 퐁사르당(1777~1866)의 업적이 지대하다.
[서울=뉴시스]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단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여기서 '뵈브'란 남편을 잃은 여성을 일컫는 단어인데, 남편 프랑수아 클리코가 사망하자 마담 클리코 퐁사르당이 시아버지 필리페 클리코의 샴페인 하우스를 물려받게 된다. 여성이 기업을 이끄는 일이 희귀했던 1800년대 초중반의 시대상을 볼 때 상당히 파격적이다.
경영에 참여했다는 사실만 특별한 게 아니다. 샴페인 제조 과정에서 효모 찌꺼기를 제거하는 기술인 '르뮈아주'(병을 돌려 침전물을 병목으로 가라앉히는 작업)와 '데고르주망'(병목을 냉동한 뒤 찌꺼기를 제거)을 개발한 것.
맑고 투명한 샴페인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클리코 여사의 이 혁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ashley8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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